제주도의 좁은 골목과 푸른 바다를 잇는 '올레길'을 통해 대한민국에 새로운 걷기 문화를 선물했던 서명숙 사단법인 제주올레 이사장이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평생을 길 위에서 성찰하고, 그 길을 통해 수많은 이들에게 치유의 시간을 나누어 주었던 그녀의 삶을 되짚어 보며, 그녀가 남긴 깊은 족적을 상세히 기록합니다.

1. 서명숙 이사장 별세 소식 및 개요
2026년 4월 7일, 제주올레의 개척자이자 전직 언론인인 서명숙 이사장이 향년 68세를 일기로 별세했습니다. 그녀는 "놀멍 쉬멍 걸으멍"이라는 슬로건 아래, 자동차가 아닌 두 발로 걷는 여행의 가치를 복원한 인물입니다. 제주 서귀포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치열한 언론인으로 살았던 그녀는, 인생의 후반전을 고향 제주의 길을 내는 데 바쳤습니다. 그녀가 일궈낸 437km의 제주올레길은 단순히 관광 코스를 넘어 한국 사회에 '느림의 미학'과 '로컬의 가치'를 심어준 상징적인 유산이 되었습니다.
2. 서명숙 프로필 및 상세 생애
서명숙 이사장은 대한민국 1세대 여성 언론인으로서 당당한 행보를 보였던 인물이기도 합니다.
출생 및 학력
서명숙 이사장은 1957년 10월 23일, 제주도 서귀포시에서 태어났습니다. 제주의 자연을 벗 삼아 성장한 그녀는 서귀포초등학교와 서귀포여자중학교를 거쳐 제주시의 신성여자고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이후 서울로 상경하여 고려대학교 교육학과에 입학했으나, 대학 시절 학보사인 <고대신문>에서 활동하며 언론인으로서의 자질을 발견하게 됩니다.
치열했던 언론인 시절
대학 졸업 후 그녀는 잡지 <월간 마당>과 <월간 한국인>의 기자를 거쳐 1989년 <시사저널> 창간 멤버로 합류했습니다. 남성 중심적인 당시 언론계에서 정치부 기자로 맹활약하며 취재 현장을 누볐고, 실력을 인정받아 취재1부장을 거쳐 여성 최초의 시사 주간지 편집장이라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이후 <오마이뉴스> 편집국장을 역임하며 대한민국 언론 지형의 변화를 몸소 겪고 이끌었습니다.
3. '글쟁이'에서 '길 위의 철학자'로의 전환
23년 동안 펜 하나로 세상을 바꾸려 했던 그녀에게도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매일 쏟아지는 마감과 취재 경쟁 속에서 몸과 마음은 만신창이가 되었고, 지독한 번아웃(Burnout)을 경험하게 됩니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의 깨달음
2006년, 쉰 살이 되던 해에 그녀는 돌연 사표를 던졌습니다. 그리고 무작정 스페인으로 떠나 800km에 달하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36일 동안 홀로 흙길을 밟으며 그녀는 비로소 '속도'에 매몰되었던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 길 위에서 만난 한 영국인 할머니가 건넨 질문, "당신 나라에도 당신을 기다리는 아름다운 길이 있을 텐데 왜 여기까지 왔느냐"는 말은 그녀의 가슴에 불을 지폈습니다.
고향 제주로의 귀환
스페인에서 돌아온 그녀는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고향 제주로 내려갔습니다. 화려한 편집장의 직함을 내려놓고,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던 제주의 뒷골목과 덤불 우거진 숲길을 직접 낫으로 치우며 길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대한민국 여행 지도를 바꾼 '제주올레'의 시작이었습니다.
4. 제주올레의 탄생과 철학
서명숙 이사장이 만든 올레길은 기존의 관광지와는 근본적으로 달랐습니다.
올레의 의미와 가치
'올레'는 큰길에서 집 대문까지 이어지는 좁은 골목을 뜻하는 제주 방언입니다. 그녀는 이 소박한 단어에 '세상과 소통하는 가장 따뜻한 통로'라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그녀가 길을 낼 때 고수했던 원칙은 세 가지입니다.
- 끊어진 길을 잇는다: 중장비를 쓰지 않고 사람이 걸을 수 있는 최소한의 폭으로 길을 연결했습니다.
- 로컬의 삶을 존중한다: 마을을 관통하며 할머니들의 텃밭과 해녀들의 숨비소리를 가까이서 느낄 수 있게 했습니다.
- 자연을 훼손하지 않는다: 이미 존재하는 길을 찾고, 최소한의 표식인 '리본'과 '간세'만 설치했습니다.
전국으로 퍼진 걷기 열풍
2007년 9월 서귀포시 성산읍 시흥리에서 시작된 1코스를 출발점으로, 제주도 전역을 한 바퀴 도는 27개 코스(총연장 437km)가 완성되었습니다. 이는 전국적으로 '둘레길', '해파랑길' 등 걷기 여행의 붐을 일으켰으며, 일본 큐슈올레와 몽골올레 등 해외로 브랜드가 역수출되는 쾌거를 이루었습니다.
5. 작가로서 남긴 문학적 유산
서명숙 이사장은 뛰어난 문장가이기도 했습니다. 그녀가 쓴 책들은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것을 넘어 시대의 아픔과 개인의 성찰을 깊이 있게 담아냈습니다.
- 영초언니: 대학 시절 정신적 지주였던 천영초 씨에 대한 기록으로, 민주화 운동의 비극과 인간애를 담아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 서명숙의 식탐: 제주 음식을 통해 섬 사람들의 강인한 생명력과 문화를 인문학적으로 풀어냈습니다.
- 흡연 여성 잔혹사: 한국 사회에서 여성이 겪는 차별과 편견을 당당하게 꼬집어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6. 사회적 기업가로서의 업적
그녀는 길만 낸 것이 아니라, 길 위의 공동체를 살리는 일에도 앞장섰습니다. 사단법인 제주올레를 사회적 기업으로 성장시키며 지역 주민들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올레 캠프'나 '클린 올레' 운동을 통해 환경 보호에도 힘썼습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한국인 최초로 사회적 기업가들의 명예인 '아쇼카 펠로우'에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7. 고 서명숙 이사장이 남긴 마지막 메시지
암 투병 중에도 그녀는 끝까지 제주올레의 발전을 위해 고민했습니다. 그녀가 생전에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 있습니다. "길은 누구에게나 공평해야 한다."
돈이 많든 적든, 많이 배웠든 아니든, 누구나 신발 끈만 묶으면 걸을 수 있는 길. 그 길 위에서 상처 입은 영혼들이 위로받고 다시 세상으로 나갈 용기를 얻기를 바랐던 그녀의 진심은 이제 437km의 길 위에 영원히 새겨졌습니다.
그녀는 떠났지만, 그녀가 남긴 길은 앞으로도 수많은 이들의 발걸음을 이끌 것입니다. 자동차 창문을 닫고 빠르게 지나치던 풍경들을 다시 보게 해준 사람, 우리에게 '느리게 걷는 법'을 가르쳐준 서명숙 이사장. 그녀의 영원한 안식을 빕니다.






